문화일반

박희섭 작가, 500년 회화나무에 새긴 자개의 빛

 반천년의 세월을 묵묵히 견뎌온 고목이 예술가의 섬세한 손길을 거쳐 찬란한 예술 작품으로 거듭난다. 한국화가 박희섭은 오는 6월 16일부터 27일까지 인천아트플랫폼 전시장2에서 '바람과 달 그리고 회화나무'라는 주제로 개인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인천문화재단의 창작 지원을 받아 마련된 자리로, 작가가 오랜 시간 천착해 온 자연과 생명의 지속성이라는 화두를 자개와 옻칠 등 전통 기법을 통해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무대다.

 

전시의 영감이 된 주인공은 인천 서구 신현동에 뿌리를 내린 수령 500년의 회화나무다. 급격한 도시화의 물결 속에서도 변함없이 자리를 지켜온 이 나무는 단순한 식물을 넘어 지역의 역사를 온몸으로 기록해 온 산증인이다. 박 작가는 이 회화나무를 관찰하며 인간의 짧은 생애와 대비되는 자연의 유구한 시간을 발견했다. 그는 나무를 풍경의 일부로 소비하는 대신, 대지와 하늘 사이에서 인간의 기억을 수집하고 저장해 온 능동적인 존재로 설정하여 작품 속에 담아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관람객을 압도하는 300호 크기의 대형 작품을 포함해 총 30여 점의 신작이 공개된다. 전시의 서사는 형체가 없으나 만물을 움직이는 바람, 순환하는 시간의 상징인 달,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지켜본 회화나무라는 세 가지 축으로 구성된다. 보이지 않는 자연의 에너지가 시각적인 이미지로 형상화되는 과정에서 관람객들은 자연과 인간이 맺어온 보이지 않는 유대감을 확인하게 된다. 작가는 이를 통해 도시 문명 속에서 잊고 지냈던 생명의 근원적인 가치를 환기시킨다.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핵심 요소는 자개와 옻칠, 순금박과 같은 전통 재료의 활용이다. 자개가 뿜어내는 영롱한 빛의 반사와 옻칠이 지닌 묵직한 질감은 화면 위에 시간의 층위를 켜켜이 쌓아 올린다. 전통 재료가 가진 고유의 물성을 현대적인 조형 언어와 결합함으로써, 박 작가는 자연의 생명력이 지닌 우주적 순환성을 더욱 강렬하게 표현했다. 빛의 각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자개의 광채는 마치 살아 꿈동이치는 나무의 호흡을 형상화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박희섭 작가는 한국에서 수묵화를 전공한 뒤 중국 베이징으로 건너가 국제적인 감각을 익힌 중견 화가다. 그의 작품 세계는 한국 전통 예술의 섬세함과 대륙의 거침없는 기운이 조화를 이룬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립현대미술관 등 국내외 주요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될 만큼 그 실력을 인정받아 온 그는, 이번 전시를 통해 기후 위기 시대에 우리가 자연을 대해야 할 태도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자연을 정복의 대상이 아닌 공존의 파트너로 인식해야 한다는 작가의 철학이 작품 곳곳에 녹아 있다.

 

무료로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지역의 자연유산을 예술적 자산으로 승화시켰다는 점에서 인천 시민들에게 더욱 특별한 의미로 다가갈 전망이다. 박 작가는 수백 년간 사람들의 삶을 지켜본 회화나무의 시선을 통해 관람객들이 잠시나마 일상의 속도를 늦추고 생명의 가치를 성찰해 보기를 권한다. 인천아트플랫폼의 붉은 벽돌 전시장 안에서 펼쳐질 500년 고목의 서사는, 관람객들에게 자연과 시간이 빚어낸 경이로운 빛의 향연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