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칼퇴인가, 책임인가?…韓日 기업 문화를 뒤흔드는 Z세대의 질문

 일본의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정시 퇴근을 하나의 ‘놀이’처럼 여기고 이를 소셜미디어(SNS)에 인증하며 서로를 응원하는 '잔업 캔슬 커뮤니티' 문화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닛케이 비즈니스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일본의 Z세대는 엑스(X, 옛 트위터) 등을 통해 퇴근 시간이 되면 남은 업무와 상관없이 회사를 나서는 모습을 공유하며 이를 당연한 권리로 인식하는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전 세계적으로 퍼진 '조용한 퇴사(Quiet Quitting)' 흐름과 맞닿아 있는 현상으로, 계약된 최소한의 업무만 수행하고 추가적인 헌신은 거부하는 새로운 노동관을 보여준다. 워라밸을 중시하는 시대적 변화 속에서 등장한 이 문화는 개인의 권리 신장이라는 긍정적 측면과 함께, 조직과의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를 동시에 낳고 있다.

 

'잔업 캔슬'을 둘러싼 논쟁의 핵심은 잔업(시간 외 근무) 명령의 정당성 여부다. 일본 노동기준법은 하루 8시간, 주 40시간을 초과하는 노동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며, 이를 넘기기 위해서는 노사 간의 '36협정' 체결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협정이 없거나, 업무상 필요성이 명확하지 않은 잔업, 혹은 보복성으로 주어진 잔업은 명백한 위법이며 노동자는 이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 육아나 건강 문제 등 노동자에게 심각한 불이익을 주는 잔업 명령 역시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반면, 유효한 36협정과 취업규칙이 존재하고 마감 임박 등 업무상 필요성이 뚜렷한 경우, 사용자의 합법적인 잔업 명령을 정당한 사유 없이 반복적으로 거부하면 근무 태만이나 업무명령 위반으로 징계나 해고까지도 가능하다는 것이 일본 법원의 판례다. 결국 모든 '캔슬'이 보호받는 것은 아니며, 잔업 명령의 합법성과 거부 사유의 정당성이 관건인 셈이다.

 


그러나 일본의 대중들은 이번 논란의 근본 원인이 개인의 태도가 아닌, 잔업을 전제로 설계된 비효율적인 업무 구조와 평가 방식에 있다고 지적한다. 야후재팬 관련 기사에 달린 800여 개의 댓글에서는 성과보다 사무실에 오래 남아있는 직원을 더 높이 평가하는 구시대적 조직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가장 큰 공감을 얻었다. 정해진 시간 안에 도저히 끝낼 수 없는 과도한 업무량을 부여하는 것 자체가 잔업을 강요하는 구조적 문제라는 비판도 쏟아졌다. 이는 '잔업 캔슬' 현상이 단순히 Z세대의 반항적인 태도를 넘어, 성과 중심의 합리적인 보상 체계와 효율적인 업무 설계, 공정한 평가 방식에 대한 사회 전반의 요구를 담고 있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흐름은 비단 일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에서도 '잔업 캔슬'이라는 표현이 직접적으로 쓰이지는 않지만, "받는 만큼만 일한다"는 기조 아래 초과 근무를 거부하는 '조용한 퇴사'는 이미 2030 직장인들 사이에서 보편적인 정서로 자리 잡았다. 다만 일본처럼 SNS에서 집단적으로 인증하는 커뮤니티 형태보다는, 개인의 선택과 태도 변화로 나타나는 경향이 짙다. 전문가들은 한국 역시 장시간 노동을 당연시하는 조직 문화와 업무 구조가 개선되지 않는 한, 유사한 갈등이 계속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결국 '잔업 캔슬' 논란은 '퇴근할 권리'와 '업무를 완수할 책임' 사이의 균형점을 찾기 위해, 기업이 명확한 기준을 세우고 구성원과 충분히 소통하며 일의 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혁신해야 한다는 중요한 과제를 한국과 일본 사회 모두에게 던지고 있다.